202412 도서관 일기 – 그와 그들의 절박함, 그것을 마주하는 나의 절박함.

 

2024년 12월 3일부터 7일까지 내가 남긴 기록

 

12월 3일에 아침부터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오후 10시 35분에 전화를 받은 것은 기억난다. 질문이 단순하고 강렬해 고막을 슬레지해머로 때리는 기분이었으니까. 평소에 정치에 대해 관심없다고 일축하지만, 술안주로 정치얘기를 좋아하는 내 친구가 그날 이렇게 물었다.

“야, 계엄이 뭐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때 하던 거.”

“그게 뭐냐고.”

군대로 정부 탈취하고 군사적 비상시국으로 전환하는 거. 근데 왜?”

“그런데 계엄인데?”

“응? 뭐가 계엄이라고?”

“우리나라가.”

언론사에서 일할 때 몇 가지 팁을 알게 됬는데, 우리나라의 아주 긴급한 소식은 주변 국가에서도 빨리 알린다는 것이다. CNN, NHK, CNTV, Fox News, Le Monde… 빨간 색에 Martial Law라고 쓰여 있었다. 황망해서 유투브를 넘겨보니 계엄령 소식이 득달같이 화면을 채웠다.

사람 생각하는 것은 다 비슷한 모양인지 몇 개의 오픈채팅방에서 계엄령 뉴스 링크들이 복사됐다. 그러다 버스가 여의도를 막은 모습, 장갑차가 달리는 모습 등의 사진이 올라왔다. 머릿속에 여러 잡생각이 싹 사라졌다.

계엄령에 따른 통행금지 내용을 읽는 순간 슬레지해머가 뇌를 강타하는 기분이었다. 7080년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보던 통금을 2024년에 한다고? 통금을 어떻게 한다는 거지? 무엇보다 무슨 권리로 통금을 한다고? 대통령이 말한 종북세력이 왜 국회에 있어?

아는 형들이 유투브 링크를 보냈다. 유명한 시사평론 유튜버들이 국회 앞에서 방송을 켜고 있었다. 주진우기자는 고민정 의원, 이후 한동훈 당대표에게 질문했고 그들의 표정은 긴장감을 담고 있었다. 그 이후는 우리가 알다시피 국회에서 190명의 국회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의 그후 행적에 대해서 많은 언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7일 오전 10시,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고 이 글을 쓰는 오늘은 7일이다. 계엄령 발효만큼 모호하고 불명확한 말들이 대통령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는 티비를 끄고 싶은 욕망을 잠재우며 타자기를 잡았다.

 

나는 오래 살지 못해서 정치권의 흐름에 대해 거시적으로 촌평을 할 수 없다. 다만 청소년기 시절부터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는 단어는 ‘무능’ 이었다. 이 단어는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을 오가며 여야와 각종 단체들의 빌미가 됐다.  앞으로도 자주 쓰일 이 구호가 12월 3일 저녁부터 7일, 그리고 이번 정부의 남은 임기까지 체감이 됐다. 2024년에 집권 3년자인 대통령은 말 그대로 능력이 없었다. 책임을 진다면서 책임을 질 능력도 없었다. 말은 그럴싸했다. 그와 정치인들이 입을 열어 붙이는 책임, 엄중, 인지 등의 단어는 기존의 말을 줄이고 덮어씌우며 까불었다. 오해와 곡해들로 진정성을 못 알아본다는 그 말들에는 입증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책임은 대체로 아랫사람들과 평범한 사람들, 사건의 피해자들이 짊어졌다. 대통령, 총리, 장관들의 언사는 화려했고 사진이 많이 나왔지만 밑의 과장, 주무관, 시민들에게 들려오는 것은 대체로 이런 뉘앙스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꼬우면 이 자리까지 올라서 네가 직접 해 보던가. 여기가 얼마나 힘든데. 야, 싫으면 떠나. 너 말고도 채울 사람 많아.”

 

국민들은 윗분들의 화려한 언사와 빛나는 비전, 논리적인 정책들이 제대로 시행하지 못함을 온 몸으로 느낀다. 국회를 무력으로 탈취하려는 저 움직임 이후에 국민의힘 정당은 “다음 정권을 야당에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저들이 섬기는 것은 국민이 아닌 그들의 권력임을 명확하게 확인했다. 이 권력이 있어야 헛된 말과 그럴싸한 정책들을 핑계로 세금을 쓰고 인사권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그들의 정치공학적 방정식을 보는 동안에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에 바뀌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며 희망을 버렸다. 사람은 고쳐질 수 있는데 자신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쳐지지 못하고, 저들에게는 깨달음의 시간이 없어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2차 계엄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때, 나는 그가 “2차 계엄을 형식적으로 넘기고 3차 4차는 다시 할 수 있어”라고 읽혔다. 국민을 향한 담화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첫번째. 12월 4일 “국정 최종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 절박함에서 비롯되었다”라는 탄핵의 명분은, “국회통보 미준수, 국회 점령 시도, 중앙선관위 장악 등” 행위가 “윤석열 대통령의 절박함”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업무의 절박함이 헌법을 무시하고 군 권력으로 국회를 탈취하는 것에 정당성이 있는가? 검찰총장까지 맡았던 대통령의 법률적 지식이 집권 3년만에 증발하셨는가?

두번째, 윤석열 대통령은 2일 “국회 출범 이후 22건 정부 관료 탄핵 소추, 모든 주요예산 삭감, 대한민국을 마약천국 민생 치안 공황상태, 민주당의 예산폭거”를 언급하면서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격에 척결하고 자유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다”라는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근데 누가 탄핵소추 거부권을 20건 이상 발효했던가? 대통령은 그럼 국회의 표결 없이 예산을 짤 권한이 있는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이 있다면 국정원이 찾아야지, 왜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에 탄핵 담화에서 말한 ‘일격에 척결’하고 싶어하는가? 이 탄핵은 누구에게 이득인가?

 

덕지덕지 붙은 이유들은 항상 그렇듯이 글로는 그럴듯하지만, 윤 대통령의 주장은 대통령의 업무적 해석이라기보다, 윤석열 개인의 논리에 가깝다. 개인과 직무의 의견이 섞이고 살이 붙으며 헛깨비가 되어가는 주장이다. 일반 시민들은 그러한 주장을 몸에 붙인 사람의 행동에 ‘어거지’라는 말을 붙인다.

대통령의 어거지에 3일 밤 9시께 국무위원들은 불려나갔고, 반대하는 몇몇 위원의 말에 대통령이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말했다는데(매일경제 뉴스, 2024년 12월 4일), 7일 오전 대국민 담화에서 책임은 “저의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 라고 했다. 잘못은 대통령이 저지르고 책임은 대통령이 있는 국민의힘 당이 맡는다. 이 놀라운 어거지에 지난 나흘 내내 두통이 머리를 찔렀고 한동안 계속 찌를 것 같다.

 

이 밖에도 논리적 취약성이 뚜렷이 드러나고, 주어와 술어의 모호함이 소주에 물 탄듯 뚜렷한 구별이 없음을 지적하자면 종이 10장은 더 쓸 것 같은데 쓴다고 해서 저들이 태도를 돌릴 것 같지 않아 줄인다.

짧게 말해 대통령이 책임지는 모습이 없으니 여당이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질 지 궁금하다. 대통령은 절박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절박함을 주장한데, 저들은 저들의 절박함으로 야당을 종북세력, 국민들은 쉽게 호도되는 대중으로 보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절박하다. 내 절박함으로 저들의 절박한 행동을 향해 외치고 싶다. “나가!”

 

무능한 대통령, 책임과 향후 임기를 남에게 의탁한 대통령, 권리와 이득은 챙기고 책임은 안 지려는 정계, 재계, 행정계의 모습을 보는 것은 분노보다 절망이 느껴진다. 인터넷에서 한반도 대신 ‘지옥불반도’라는 말이 남발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이 반도가 지옥불임을 2024년 끝에 다시 깨닫는다. 이 반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남은 시간들은 지리멸렬하고 슬프며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데, 지금 살아서 이 글을 쓰는 것도 슬프다.

 

p.s. 2024년 12월 7일 탄핵 결과가 어찌 되든 이 글을 8일에 올리려고 마음먹었다. 8일 새벽 01시10분에 첨언을 더한다. 이날 300여명의 의원들 중 195명이 재석했으며, 여당에서는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의원이 표결에 참여했다. 안철수 의원은 찬성 의견을, 김상욱 의원은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날 17시 48분에 시작한 1차 탄핵소추는 21시 27분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탄핵소추의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 것에 국회를 대표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탄핵소추 불성립 이후 12월 8일 0시까지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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