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도서관 일기 – 과로의 유혹

 

Oladimeji Ajegbile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2696299/

 

“과로가 무슨 유혹을 한단 말이여”?

선배의 말에 나는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휘휘 저었다. 과로가 유혹을 할 일은 없다. 누가 과로를 좋아한단 말인가. 나는 그냥 천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배가 떠드는 말들이 들리지 않는다. 쌓여진 일의 리스트를 대충 헤아려보니 오늘 밤에 잠을 잘 수 있을까 싶었다.

일을 몰아서 할 때 가장 큰 기쁨은 아드레날린이다. 이 폭발력은 갑작스럽게 내 창의성을 말 그대로 ‘폭발’시킨다. 열흘 동안 못 자고 고민하다가 갑자기 눈이 내리는 것을 보자, 무언가 머릿속에서 “뚝” 끊기면서 미친듯이 글이 써졌다. 그날 내가 쓴 소설은 5시간동안 6개 이야기를 썼는데, 평소에 일기 쓰듯이 쓴 글 보다 훨씬 나았다.

내가 하는 일인 편집 일도 몰아서 하면 이전에 설렁설렁 하던 때보다 퀄리티가 더 좋고, 게임도 진득하게 7시간 정도 몰아서 하면 최고등급까지 간다. 아, 물론 다른 것도 있다. 예를 들어서 마라톤(요즘 조깅을 못 뛰고 있다)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실력이 늘지 않는다.

 

이번에 내 과로는 독립출판 교실이었다. 주제와 쓸 것을 알음알음 찾고 계획을 수정하다가 도서관 공고를 보고 “이크!” 머릿속에 괘종과 거대한 종들이 단체로 울렸다. 시간은 짧고, 11월 업무 일정은 쌓여 있고, 거기다 개인적으로 약속한 것들도 널려 있는데, 이걸 다 어쩌지?

어쩌긴 어째! 해야지!

과로의 유혹에 빠지면 가장 먼저 잠을 줄인다. 7시간 자던 것을 6시간으로 줄인다. 늦게 일어나면 그만큼 늦게 잠든다. 도서관들은 대체로 9시에 문을 여니까 8시 30분 안짝으로 나가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고, 몇몇 작은도서관(10시에 문을 여는 곳도 있다)을 제외하면 12개의 전주시 도서관과 9개의 시립 작은도서관, 도청과 도교육청, 대학의 도서관들을 섭렵했다.

 

그리고 해일처럼 수위를 높이는 글쓰기의 고통.

낮에 미친듯이 돌아다니고, 저녁에 완산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있자면 – 멍 하다. 그리고 나는 글이 풀리지 않으면 심각하게 성격이 나빠진다. 원래도 좋은 성격이라고는 못하지만, 단순히 누군가 걷는 소리나 모니터의 팝업창,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까지 다 듣기 싫다. 마음을 좀 달래야겠어. 불법승. 주님의 기도, 아슈하두 안라 인샬라, 궁궁을을…. 아, 다 소용없다. 이놈의 과로가 문제인 것을 안다. 그러니까 문제의 근본 원인을 알면서 외부에서 드러나는 증상만 닦아내려 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은 계속 흐른다. 어찌한단 말인가, 어찌하면 이 글을 다 쓴단 말인가.

 

결국 마지막 날은 공치고 멍하니 덕진공원에 앉아 있었다. 쓸 이야기야 많다. 이미 쓰기도 했다. 2주간 70여페이지를 꾸역꾸역 채웠다. 그런데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이대로 해도 된다. 사실 분량이 조금 아깝긴 하다. 아깝긴 하다, 그런데 괘종이 다시 뇌를 친다. 다 지워야 해, 이건 내가 쓰고 싶은 것이 아니야, 다 지워야해. 그래서 다 지웠다. 뇌도 나도 백지상태다. 그냥 독립출판 포기해버릴까. 포기해도 되지 않은가. 아, 덕진공원 멀리서 안선생님(슬램덩크)이 보이는 것 같다.

“포기하면 편해… 하지마….”

아 잠깐, 그건 원본 만화 대사가 아닌데… 그리고

 

포기하면 안 편해!

나무를 향해 소리없이 욕을 한바탕 쏟아내고 있으니 아주머니 둘이 나를 피해 돌아간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찻집에 가서 차를 좀 사고 물을 한번에 3리터를 끓였다. 차를 3리터 끓이는 동안에 생각했다. 까무라칠때까지 써보자.

일단 아무 말이나 쓰고, 멈춘다. 아무말이나 쓰고, 멈춘다. 아무 말이나 쓰고….. 유화에서 나무 먼저 그리고, 하늘 쓱슥 그리다가 잠시 멈추고 다시 풀을 그리다가, 위에 다람쥐를 덮는다… 이렇게 말하면 내 글쓰기가 밥 아저씨의 훌륭한 회화실력 (어때요, 글쓰기 참 쉽죠?) 같지만, 실상은 이렇다. 서문 쓰고, 아무 도서관 이야기나 쓰고, 이번에는 마지막 결론, 다시 아무 도서관 이야기, 그리고 다시 새고…. 3리터의 차가 다 비워졌을 때가 저녁 11시 10분, 물3리터를 더 끓이고 다시 글을 쓴다. 차를 끓인다, 다시 쓴다. 잠을 잠깐 잔다. 1시간만에 깨서 다시 쓴다. 찻물이 쓰다. 물을 좀더 넣고…. 다시 글을 쓰다 잠들었다. 시계를 안 맞췄는데도 40분만 자고 일어났다. 눈알의 세포 하나하나마다 칼날을 꽂은 것 같다. 어쩌라고, 그러면 눈이 먼 채로 살면 되잖아. 다시 쓰고, 불필요한 문장을 지우고…

 

손가락을 못 움직이겠어. 눈을 뜨지 못하겠어.

그러면 입을 쓰면 되지!

핸드폰의 녹음기를 켜고 문자 변환을 활성화 시킨 다음에 중얼거렸다. “완산도서관에 대해 가장 많이 쓸 것임을 알려둔다. 이는 완산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시간을… 잠깐만, 사실 전북대 도서관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내긴 했는데… 문장 수정한다, 이 부분부터… 올해 완산도서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이런 식으로 중얼거린다. 아침 해가 떠오른다. 눈을 감고 중얼중얼 한 다음에 변환 버튼을 누르고, 급히 샤워를 한다. 대략 A4용지 절반이 완성됐다. 자동차에 올라타서 또 지껄인다. “그러므로 도서관의 예산을 늘리고 도서들을 두 배 이상 확충해야….”

이런 식으로 22시간동안 하룻밤 만에 81장 정도를 써내렸다. 써내린 후에 다시 깎아내니 71장. 과로가 만들어 낸 기적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다시 출간된 책을 보니 영 엉망이다. 급하게 내용을 채우긴 했는데 중언부언이 너무 많다. 오타도 많지만 비문도 드러난다. 내용은 알겠는데 논리가 엉망진창이다. 설계도 없이 겉면만 그럴싸하게 지은 건물 같다. 책을 덮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과로가 날 유혹했어. 그리고 유혹에 넘어갔어.

과로하면 성과는 나오지. 어쨌든 뭐가 되긴 하지.

그런데 왜 만족을 못할까?

왜긴 왜야, 쫒겨서 그렇지. 스스로를 속이고, 생각을 늘어놓고, 양을 채웠지.

조금씩, 꾸준히 쓰는 것이 더 바른데

스스로를 속이고, 스스로를 괴롭혀, 스스로 망친 것이지.

 

그리고 이 글도 (밥 먹고 사는 업무의)과로에 쫒겨서 오늘에야 완성했다. 11월 1일부터 조금씩 쓰다 말다 했는데 20일께에 몰아서 쓰는 이 고백은 편하지만, 언젠가 내가 다시 읽으면 스스로를 향해 이렇게 타박할 것이다.

 

과로가 또 날 유혹했어.

이제는 안 넘어가야하는데,

습관이란 참 지독하구나.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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