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사람들은 팥빙수같이 시원하고 달달한 전주식 소바를 먹으며 여름을 난다.”
-from 누들플래닛 vol.5
그릇 안에 담겨진 흑백요리를 떠올린다
살면서 콩국수를 마주했을 때는 8살 남짓이었다. 하얀 콩물에 새까만 메밀면과 오이 몇 개, 그리고 한가득 부어주던 설탕. 어린 나이라서 설탕을 네 숟갈 넣어 어머니가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아이들 수저가 아니라 일반적인 쇠수저였다) 그래서 콩국수는 간식에 가까운 음식이었다. 좀 맛이 없으면 설탕을 퍼부으면 되는 맛으로. 대학교 졸업 쯔음에 지금은 사라진 전북대의 한 국수집에서 콩국수를 먹고는 설탕 붓는 것을 멈췄다. 아, 콩에도 자연스러운 단맛이 있구나!그 뒤에도 여러 콩국수를 맛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전라도권의 콩은 상대적으로 단 맛이 적다. 난 농사와 지형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지만, 내가 먹어본 콩 요리(콩국수, 두부)들을 보면, 강원도나 경상북도에서 재배하는 콩 요리에는 자연스러운 단맛이 있다.
거기다 전라도에서 단맛은 수식의 기본값에 가깝다. 콩국수건 팥죽이건(팥 자체가 맛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도에에서는 일단 설탕을 건네준다. 나는 이제 엄연한 반골로 “이모, 설탕 주지 마시요!”라고 외쳐 동행들의 핀잔을 사기도 하지만, 여전히 설탕맛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그건 그렇고, 콩국수에 설탕 얘기를 하러 이렇게 서두를 풀은 것이 아니올시다. 그것은,
정녕 전주 콩국수는 소바면이 기본값인가?
전주 콩국수의 큰 특징은 메밀면이다. 하얀 콩물에 메밀국수, 타지인들은 이해를 못한다. 아니 왜 소면을 놔두고 메밀면을? 거기다 가끔은 서리태콩으로 검녹색 콩국에 검은 메밀면이다. 색감으로 보면 독극물의 색(녹색과 검은색)이 비슷하다. 으아이 챠! 이거 콩국수 맞죠?
서리태 콩국의 경우 전라도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국에 있으니 이건 넘어가자. 서리태콩은 진한 맛을 품고, 백태나 메주콩은 은은한 맛이 있다. 근데 왜 메밀면이란 말인가? 인터넷에서 쓴 것을 보면 ‘전주에는 오래된 소바 맛집이 많고, 소바집에서 콩국수를 겸업하면서 소바에 쓰던 메밀면을 돌려썼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닐테지만, 조금은 다른 생각으로 말하고 싶다.
소바가게에서 지속적으로 무의식을 점유한 것은 아닐까?
이미 메밀면이 여름 국수로 익숙해진 상황에, 일반 소면이 담긴 콩국수가 나오더라도, ‘혹시 소바면 있으면 소바면으로 주시요’라는 요청으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미 소바를 많이 뽑아내서 양도 충분한데다, 소바집에서는 콩물만 확보하면 바로 메뉴를 늘릴 수 있고, 새로운 가게에서도 ‘아, 콩국수에는 소바면이 더 잘팔리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점유율이 늘어난 것일지도. 일례로, 중국집에서 판매하는 콩국수는 중화면을 쓰고, 국수집의 콩국수는 소면을 쓴다. 하지만 전주의 오래된 분식집은(메뉴에서 소바를 판다면) 대체로 소바면이다. 흠, 소바면의 긴 약진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마치며 7월과 8월에 맛본 콩국수 가게를 몇 곳을 소개해 본다. 대중없이 골랐지만 협찬, 광고 없이 내가 발품팔아 간 곳이다.
전북대학교 정문 쪽의 솔뫼마을은 팥칼국수와 바지락칼국수가 맛있다. 많은 웹 리뷰들이 가을, 겨울, 동지에 여러 소식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여름이면 소바와 콩국수가 자리를 차지한다. 검은콩(서리태콩)을 써서 어둡한 콩국에 어두운 소바면. 요리왕 비룡에 나온 어둠의 국수인가요? 천만에, 한 젓가락 먹으면 알게 된다. 콩국물이 진하고, 감칠맛이 깊다. 이 검은색은 마치 오뜨 쿠뛰르의 기본 패션 중 검은색과 검은색을 절묘하게 배합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맛의 조화도 깨트리지 않는다.
일행들과 함께 먹는다면 만두를 주문하는 것도 추천한다. 따뜻한 만두 한 입, 그 다음 차가운 콩국수는 매력적인 선택이다. 아, 그리고 기본 물은 보리차가 아니라 결명차자다.
평범한 국수면을 쓰는 식당을 꼽자면 전주 구도심 공구거리-객사 사이의 ‘새참국수’도 좋은 선택이다. 하얀 콩물에 하얀 면, 그리고 정겨운 반찬이 인상적이다. 매운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은 뒤 마시는 콩물은 자극과 침잠을 번갈아가며 여름 더위를 달랜다. 면이 다소 얇은 것도 마음에 든다. 무거운 습도를 가볍게 날려버리는 식감이다. 얇은 면의 청량함을 찾으신다면 한번쯤 들러봐야 할 선택지다.
칼국수면도 콩국수에 훌륭히 어울린다. 전주 남부시장의 동래분식의 콩국수는 일단 양이 크다. 배가 고파서 곱빼기를 시켰는데 후회했다. 다 먹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칼국수의 다소 넓은 면에 콩물이 묻어 맛을 더하고, 콩물의 농도가 짙다. 콩가루와 오이가 같이 어우러지면서 입에 휘감기는 매력도 짙다. 두툼한 칼국수면과 진한 콩국, 시원하면서도 진한 조합이다.
중화면은 콩국수는 어떨까? 전주에서 거리가 꽤 멀지만 완주의 ‘중국성’에서 먹은 콩국수도 격찬할만 하다. 먼저 넓은 중화면에 자작한 콩국물이 부어져있는데 질감이 찐득하다. 국수 하면 국물이 다소 있는 것을 상상하지만, 이 콩국수는 얼은 콩물이 마치 짙은 소스 역할을 한다. 거기다 호박씨에 건포도를 고명으로 먹으니 중화국수가 아니라 동양식 파스타에 콩국물 소스를 먹는 듯하다. 무엇보다 콩 자체의 단맛이 깊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토록 여러 콩국수를 먹으면서 느낀 점은 “역시 여름에만 먹을 수 있어서” 특별한 것이 아닐런지. 생각해보면 냉면과 소바는 겨울에도 먹을 수 있지만 콩국수는 여름 외에는 잘 팔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남은 9월까지 콩국수로 점심을 해결할까, 입맛을 다셔본다.
가게 정보
솔뫼마을
주소: 전북 전주시 덕진구 매봉로 49 (금암동 1587-102)
영업시간: 10:00 ~ 20:00
전화: 063-275-8661
주요메뉴: 검은콩국수 10,000원, 새알팥죽 10,000원, 팥칼국수 9,000원, 바지락칼국수 9,000원, 보리밥 7,000원
구글지도 : https://maps.app.goo.gl/MxbzLFcYeYPNEixMA
새참국수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4길 100 (고사동 257-5)
영업시간: 11:00 ~ 20:00 (브레이크 타임 15:30~17:00, 라스트오더 19:50)
전화: 0507-1334-6188
주요메뉴: 국수 6,000원, 비빔국수 7,000원, 왕만두(4개) 5,000원
구글지도 : https://maps.app.goo.gl/Fo9d4kTzrchMrAmr9
동래분식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2길 39 (전동3가 2-240)
영업시간: 07:00 ~ 19:00
전화: 063-288-4607
주요메뉴: 콩국수 7,000원 새알팥죽 7,000원, 팥칼국수 6,000원, 손수제비 5,000원
구글지도: https://maps.app.goo.gl/v1LUCT6yA43gDNz37
중국성
주소: 전북 완주군 동상면 동상로 696-31
영업시간: 11:00 ~ 21:00 (월요일 정기 휴무)
전화: 063-246-1208
주요메뉴: 짜장면 6,000원, 볶음밥 8,000원, 모듬해물짬뽕 15,000원, 탕수육(소) 18,000원, 콩국수 9,000원
구글지도: https://maps.app.goo.gl/bhGLbPnxLzoAckdB9
이 글은 2025년 7월과 8월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